16980912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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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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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9월 11일 戊寅년 壬戌월 癸未일, 양력 1698-10-15 1698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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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9월 12일 계미
十二日 癸未
맑음
이날 밤 흥아(興兒)인물가 급히 편지를 보내 정광윤(鄭光胤)인물이 돌아왔다고 알려왔다. 조사보고서 내용 가운데 누락되었다고 하는 것은, 전에 이른바 이여무(李汝茂)인물가 농간을 부려 탕감하려고 한 곡식이 아니라, 경오년(1690) 진휼 당시 민순(閔純)인물이 진휼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려고 사창 통영(統營)의 물품 92섬 및 검영(檢營)의 물품 61섬을 대출하였는데, 다음 해 3월에.....수령이 교체될 때.....도로 갚으려고 중기(重記)에 기재하지 않고 본전(本錢)을 내주고, 색리(色吏)개념 이무지(李茂枝)인물로 하여금 도로 갚을 것을 마련하게 하였는데, 이무지인물가 그 본전을 먹어버리고 갚지 않은 것이다. 내가 신미년(1691) 가을에 환자[還上]를 돌려받았던 당시에는, 단지 새 환자만 받아들이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묵은 환자를 받는 것은 거론하지 않아 앞서 이무지에게 준 것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계유년(1693)과 갑술년(1694) 두 해에 이르러 묵은 환자 가운데 3분의 1을 받으라는 관문(關文)이 내려온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서, 그 당시 수령이었던 권성(權忄+省)인물의 중기(重記)에는 실리게 되었다. 지금 이고창현감인물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연도별 조목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신미년(1691)을 누락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사 관원이 이와 같은 곡절을 명백히 변별하지 않고, 대충 신미년에 누락된 기록을 바탕으로 나를 죄안(罪案)에 넣었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관찰사개념에게 속히 알려 장계에 섞여 기록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나 아마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是夜興兒走書 報鄭光胤之還 査狀中落漏云者 非向所謂李汝茂弄奸 欲爲蕩滌之谷也 乃庚午年賑恤時 閔純爲料理賑資 貸出社倉統營租九十二石零及檢營租六十一石零 而翌年三月...遞歸時...爲還報 不載重記 出給本錢 使色吏李茂枝料理還報 而茂枝食其本錢而不報 及余辛未秋捧時 有只捧新還上之令 故舊還上不爲擧論 上項 李茂枝逢授者 終不現出 至癸酉甲戌兩年 舊還上三分之一徵捧關文來到之後 始爲現出 其時倅權忄+省 重記 乃爲載錄 今此査報中 以年条懸錄 故爲辛未落漏 而實非余之所可知 査官不爲明卞如許曲折 泛以辛未落漏懸錄 以爲余之罪案 豈不痛哉 不可不速圖於方伯 冀免混入於啓聞 而恐不能及 切歎奈何
아침을 먹은 뒤에 죽도(竹島)공간를 떠나 백치(白峙)공간극인(棘人)개념 이(李) 제(弟)인물를 역방하여 만나고, 날이 저물어 공간으로 돌아왔다.
朝食後發竹島 歷見白峙李棘弟 日暮還家
아이들이 지난 달 28일 보낸 잘 있다는 편지를 보았는데, 이석신(李碩臣)인물이 가져와 전해준 것이다.
見兒輩前月卄八平書 李碩臣持來傳致
정광윤(鄭光胤)인물이 숙위하였다.
○鄭光胤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