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72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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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7월 26일 戊寅년 庚申월 己亥일, 양력 1698-09-01 1698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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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7월 27일 기해
二十七日 己亥
흐리다 맑음
陰陽
아내인물가 백치(白峙)공간에 와서 조문했다. 흥아(興兒)인물가 모시고 왔다가 방향을 바꾸어 내게 인사하고 곧 돌아갔다.
室人來弔白峙 興兒陪來 轉來覲旋去
정광윤(鄭光胤)인물이 그저께 고창(高敞)공간에서 돌아와서 조사한 일이 끝나서 내 결백함이 증명되었다 하니 다행스럽다. 당초 이언경(李彦經)인물이 곡식 800여석을 훔쳐 물품에 실어 서울 집에 보내고는, 죽은 창색(倉色)개념 김재익(金載益)인물이 훔쳐 먹어 축이 난 곡식으로 기록하여 씻으려 했다. 조정에서 해당 관원, 감관, 창고지기 등이 죄가 없지는 않으므로 실상을 조사하여 죄를 논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더니, 이언경인물은 전임 현감에게 자기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여 신미년(1691)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조사를 하여 나에게 억지로 더한 부족분이 수백석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 정광윤인물이 당초에 함평(咸平)공간으로 가서 문서를 고출(考出 조사)했더니 나는 1석도 부족한 게 없었으므로 이언경인물에게 그대로 말했는데, 효거(爻去, 말소)를 허락하지 않고 그저 '조사관에게 맡기면 저절로 명백하게 된다'고 말했으니, 그의 양심 없는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고창군수 한익상(韓益相)인물이 조사할 때 김재익인물의 아비인 김태산(金太山)인물이란 사람을 잡아가두고 문서를 색출했더니, 이언경인물이 곡식을 훔쳐 먹은 정황이 분명하여 숨기기 어려웠다. 조사관이 지극히 난처하다고 생각할 즈음, 마침 문서 중에 순무사(巡撫使)개념의 계문을 통해 경오년(1690)과 신미년(1691)에 환자를 탕감한 일이 있었는데, 함평(咸平)공간의 아전들이 이걸 빌미로 농간을 부려서 그들이 계유년(1693)과 갑술년(1694)에 환자를 받아먹고 기록한 책에서 관련 장을 잘라 경오년에 탕감한 도록(都錄) 밑에 붙인 일이 문서를 찾아 열람할 때 우연히 발각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부족분이 없는 심방(沈枋)인물 이하 4명에게 채워서 전혀 아무 일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이언경인물도 훔쳐 먹은 쌀을 잘 처리하여 마침내 무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鄭光胤再昨自高敞還 査事已畢 吾得白脫 可幸 蓋當初李彦經偸載八百餘石之谷 船送京家 欲以身死倉色金載益之偸食無面 施行蕩滌 而朝家以當該官員監官庫子等不能無罪 査覈論罪之意 行關 則彦經欲歸其罪於前官 溯至辛未行査 勒加無面於吾 至於數百石之多 鄭光胤初進咸平 考出文書 吾無一石之無面 故直言於彦經 而不許爻去 但曰若歸査官 自當白脫 其意之無良 可勝言哉 及至高敞倅韓益相行査也 捉囚載益父太山者 搜出文書 則彦經之偸食 昭然難掩 査官極以爲難處之際 適於文書中有曾因巡撫使啓聞庚午辛未還上蕩滌之事 咸平吏輩緣此弄奸 就渠輩癸酉甲戌受食還上所付冊 割其張 粘付於庚午蕩滌都錄之下者 搜閱文書之時 偶然發覺 故以此充數於沈枋以下無面 以爲都無事之地 彦經亦好消偸食之物 而卒無事云
이신우(李信友)인물와 진수(陳秀)인물가 왔다.
○李信友陳秀來
성덕기(成德基)인물가 발인한 뒤로, 윤경리(尹慶履)인물가 출타했다가 돌아와 일꾼을 구타하여 쫓아내고는 발도 못 붙이게 했다. <Person id="P0711" name="성덕징"><Person id="P0712" name="성덕항">성(成) 생(生) 무리인물</Person></Person>가 직접 관가에 들어가 고소장을 바치려고 서둘러 관가에 갔다.
成德基發引之後 尹慶履出他還來 驅打役夫以逐之 使不得接足 成生輩欲親入官庭呈狀 馳進官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