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403

jiamdiary
15.164.86.204 (토론)님의 2020년 2월 3일 (월) 23:03 판 (import)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9743
← 이전 다음 →
1697년 4월 2일 丁丑년 乙巳월 壬子일, 양력 1697-05-22 1697년 4월 4일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7년 4월 3일 임자
三日 壬子
맑음
이성(爾成)인물이 갔다.
爾成去
윤적미(尹積美)인물가 왔다.
尹積美來
종제인 이대휴(李大休)인물, 극인개념 안형상(安衡相)인물이 왔다.
李從弟大休安棘衡相來
송수기(宋秀杞)인물가 왔다.
宋秀杞來
○해 가운데에 검은 빛이 있어 때때로 정해진 모양없이 흔들린다. 이미 한 달 남짓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으니 매우 이상하다. ◉ 그 모습은 이렇다.
○日中有黑光 有時搖蕩不定 已過月餘而不止 極可異也 ◉其狀如此
정(鄭) 생(生)인물이 왔다.
○鄭生來
別珍高察訪來
○저번 달 12일에 내가 낭성(朗城)공간에 도착해서 서울공간로 보낸 인편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종아(宗兒)인물가 입성(入城)한 후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으니, 요즈음의 우울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前月十二余到朗城所送京便 尙不還 宗兒入城後消息無由得聞 此間憂鬱不可狀言
대산(大山)공간의 정씨 집안의 비(婢) 석화(石花)노비는 연주와 노래를 잘해서 창기의 무리에게서 꽤 칭찬을 받았다. 얼마전 안도증(安道曾)인물서울공간에서 보성공간의 농사(農舍)로 내려와 데리고 갔다. 【안도증은 바로 전 무안현감 안준유(安俊孺)인물의 종질로 업무(業武)개념인 사람이다.】 한 달도 안 돼서 석화의 부음을 대산의 본가에 전하고 이윽고 또 상을 치르고 시신을 실어서 보냈다. 장례를 지낸 뒤에 갑자기 말하기를 자기의 비(婢)가 마침 죽어 그 시신을 실어 보낸 것이고 석화는 죽지 않았다고 했다. 대개 안도증의 의도는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는 석화를 몰래 첩으로 두려 했던 것이다. 그 후 안도증도 객지 생활 중에 사망했는데 석화의 거짓 죽음에 관한 소문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그 진위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안도증이 요절한 것은 석화에게 홀린 데서 비롯된 것 같고, 석화의 거짓 죽음에 관한 소문도 안도증이 평소 방랑한데서 비롯했기 때문이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게다가 들으니 안도증이 석화의 시신을 실어서 보낼 때 그 명정(銘旌)에 ‘유인 하씨(何氏)의 널’이라 적었다 하는데, 사람들은 ‘안도증이 석화에게 홀린 탓에 유인이라 칭했다’ 하였다. 그런데 석화의 성에 대해 듣고보니 바로 ‘하(河)’ 자(字)였는데, 이것을 ‘하(何)’로 적은 것이니, 이를 통해 본다면 이는 실로 글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무지의 소치이다. 그렇다면 안도증이 그동안 한 행동은 모두 책망할 것도 없고 도리어 가소로운 일이다.
○大山鄭家婢石花善彈唱 頗見稱娼流 頃者安道曾自京下來 寶城農舍率去 安卽安務安俊孺之從姪 業武者也 居未月 傳石倻訃於本家 旋又治喪載送 旣葬之後 忽有言 安之婢適死以其屍載送 石則不死 蓋安之意 欲以生爲死 潛爲率畜也 厥後安亦死於客中 而石倻詐死之說猶未已 殊未知其眞僞 而安之夭似由於蠱惑石倻之致 石之詐死之說亦由於安之平日浮浪之故 良可嘆也 且聞安之載送石屍也 題其銘旌曰 孺人何氏之柩云 人謂安以蠱惑之故 稱以孺人 而聞石之姓乃河字而以何書之 以此見之 則此實不識字 無知所致 然則安之前後所爲 都不足責 還可笑也
○근래에 사망한 전임 창성부사 임익하(任翊夏)인물 부모의 무덤이 해남공간 비곡면(比谷面)공간 장산(長山)공간이라는 곳에 있는데, 이석신(李碩臣)인물의 장인인 구림(鳩林)공간의 박세근(朴世根)인물과 그 아들 박태준(朴泰俊)인물이 최근에 연이어 사망하여, 임(任) 가(家)의 무덤 뒷 맥에 묏자리를 정했다. 이곳은 민전(民田)개념이라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했다. 그런데 구덩이를 파 회(灰)를 다져넣고 나서야, 임(任) 가가 비로소 매장을 못하게 하려 나섰다. 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자기 부인을 떠메어 데려와 무덤구덩이 속에 앉아있게 했다. 피차간 힘으로 싸워, 일이 이미 그르쳐진 지경에 이르렀다. 박씨 집안에서는 여노(女奴)를 많이 데려와 구덩이 속의 부인을 안아서 끄집어낸 후 하관(下棺)【박세근을 묻었다고 함】했다. 피차간의 시시비비는 차치하더라도, 박씨 집안에서 애초에 이 산을 잡았을 때, 임씨 집안 무덤과 멀지 않으니 반드시 분쟁이 생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을 터이다. 임씨 집안의 부녀가 구덩이 속에 들어가 앉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일이 어그러진 것인데 이런 사정을 보고도 거기에 관을 집어넣어 선봉으로 삼았으니, 이 어찌 차마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임씨 집안으로 말하자면, 자기 집안 무덤 뒷 맥이긴 하지만, 밭을 사서 소나무숲을 가꾸지 않았으면서도 이제 와서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급기야 부인을 동원하여 맞서 싸울 계책을 냈으니, 이 또한 차마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요사이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무덤 쓸 산에 대한 욕심이 하늘끝까지 넘실대어, 세력으로 가능하다면 억지로 빼앗거나 투장하는 등 하지 못하는 짓이 없기에 이르렀는데, 심지어 이제 관을 선봉으로 삼고 부인을 싸움판의 졸병으로 삼기에 이르는 일까지 많으니, 이 어찌 효성스러운 아들과 손자가 길지(吉地)를 택하여 어버이를 안장하는 뜻이겠으며, 또한 어찌 무덤을 잘 정하여 선조의 영혼을 공경하는 도리이겠는가? 옛 사람들이 초목이 무성한 장풍득수(藏風得水)개념의 땅을 길지로 여긴 까닭은, 해(害)가 없는 땅을 골라 조상의 육신을 편안케 모시려는 데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이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지관들의 말만 믿고서 복을 받으려는 마음만 가득하다. 비단 자식이 어버이의 무덤을 쓰는 본뜻을 어길 뿐 아니라, 심지어 관을 끌어다가 싸우며 의리는 내팽개치니, 그 이치에 어긋난 패악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복을 구하는 도(道)로써만 말한다 해도, 덕이야말로 복의 기반이니 덕이 없는데도 복을 받는 이치란 없는 것이다. 이미 사리에 어긋나니 덕 없음이 심하다. 복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이렇게 하고서 원하는 바를 구한다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복이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실로 화를 부르는 길이다. 내 항상 이에 대해 마음 아파하다가 이렇게 기록하여 감계(鑑戒)로 삼는다.
○近故任昌城翊夏父母墳 在於海南比谷面長山稱名地 李碩臣妻父鳩林朴世根與其子泰俊 頃者相繼而死 占山於任墳之後脈 而乃是民田 重價購得 旣穿壙築灰之後 任哥始爲禁葬之計 而知其力不敵 舁致婦人 使之入坐壙中 彼此力戰 至於乖悖之境 朴多率女奴 抱出壙中婦人而下棺 -卽朴世根葬云- 彼此是非 姑捨勿論 朴之初占此山也 與任墳不遠 則知其必有爭端 及其任之婦女 入坐壙中 則事已乖悖矣 見其如此 而以棺當之 作一先鋒 此豈可忍爲者耶 任則雖是渠家墳之後脈 旣不買田養松 則到今禁斷 固不可爲 而至以婦人爲拒戰之計 亦是不忍爲者也 近世 毋論京外 山欲滔天 如其力所可及 則抑奪偸葬 無所不至 至於以棺爲先鋒 以婦人爲戰卒者多有之 此豈孝子慈孫擇其吉地 以安厝之之意耶 亦豈庇其宅兆 以敬先靈之道耶 古人以草木茂盛藏風得水爲吉地者 不過求其無害之地 以安體魄也 今世之人曾不念此 唯憑術者之說 全以發福爲心 非徒已失孝子葬親之本義 至於曳棺而戰 不計義理 其乖戾悖惡 何可言哉 雖但以要福之道言之 德者福之基也 無德而福 無其理也 旣悖於理 則無德甚矣 福安從生 以其所爲求若所欲 何以異於緣木而求魚 非徒福不生 實是召禍之道 余常痛心於此 故聊記之 以爲鑑戒之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