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0822

jiamdiary
15.164.86.204 (토론)님의 2020년 2월 3일 (월) 23:02 판 (import)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96822
← 이전 다음 →
1696년 8월 21일 丙子년 丁酉월 乙巳일, 양력 1696-09-17 1696년 8월 23일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6년 8월 22일 을사
二十二日 乙巳
맑음
김형구(金享九)인물가 왔다.
金享九來
윤재도(尹載道)인물옥과(玉果)공간감시(監試)개념를 보러 가는 길에 역방하여 만났다.
尹載道發玉果監試之行歷見
윤기반(尹起磻)인물, 진욱(陳稶)인물, 이신재(李信栽)인물, 이운재(李雲栽)인물, 이장원(李長原)인물이 와서 위문하였다.
尹起磻陳稶李信栽雲栽李長原來唁
윤경(尹儆)인물, 이옹(李滃)인물이 와서 위문했다.
尹儆李滃來唁
아이인물서울공간에 들어간 후 소식이 깜깜한 채 들려오지 않아 심사를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마침 윤경(尹儆)인물의 말을 들으니, 윤 서흥(瑞興)인물 아들의 편지가 오늘 서울에서 왔는데, 초10일에 보낸 것이다. 아이가 (…) 아직은 심문하지 않았다 한다. 초6일에 필시 서울에 들어갔을 것이므로 초10일이면 5일째인데 (…) 혹 의금부가 집무를 개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염려된다.[1] 의심하고 염려되는 마음을 더욱 견딜 수 없다.
○兒子入京後 消息漠然無聞 心事難定 卽聞尹儆之言 尹瑞興子書簡今日自京來到 卽初十出也 兒子就轉■■姑無推問之擧云 初六必入京 初十爲五箇日 而無所問■…■由 慮或金吾坐起未易之故耶 疑慮之心 尤不能堪
김진서(金振西)인물, 임취구(林就矩)인물가 위문하러 왔다.
○金振西林就矩來唁
























주석[ ]

  1. 의금부가 … 염려된다 : 8월 3일 사간원 사간 이정명(李鼎命)이 강오장(姜五章) 등의 국청(鞫廳)에 대해 논계(論啓)하지 않은 대관(臺官)들의 체차(遞差)를 청하는 계(啓)를 올린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승정원일기》 1696년 8월 3일자 19번째 기사를 참고할 것. 이후 8월 4일 사헌부 지평 송징은(宋徵殷)이 국청에 참여하여 강오장 등에 대해 논계하지 않은 일 등을 이유로 체직(遞職)을 청하는 계를 올린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승정원일기》 1696년 8월 4일자 4번째 기사를 참고할 것. 당시 신임 우의정이었던 윤지선(尹趾善)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국청에 참여한 양사(兩司)의 관원들이 배척을 받은 일로 삭직(削職)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승정원일기》 1696년 8월 4일자 7번째 기사를 참고할 것. 뿐만 아니라 송징은의 상소에 대해 이정명은 8월 5일 다시금 체직을 청하는 계를 올린다.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당시 양사에 속한 대부분의 대관들이 강오장(姜五章) 등의 국청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사뿐만 아니라 국청을 주관하였던 의금부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병조판서였던 이세화(李世華)가 의금부의 수장(金吾首任)으로서 올린 상소가 《승정원일기》 1696년 8월 5일자 8번째 기사에 언급되어 있는데, 의금부 또한 당시 국청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