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0518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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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5월 17일 甲戌년 庚午월 乙卯일, 양력 1694-06-10 169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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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5월 18일 을묘
十八日 乙卯
맑음
심(沈) <Term id="M067" name="관찰사">감사(監司)인물</Person> 댁의 노(奴) 논임(論任)노비서울공간에서 돌아와 흥아(興兒)인물, 두아(斗兒)인물 두 아이의 잘 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5일에 보낸 것이다.
沈監司宅奴論任自京還 見興斗兩兒平書乃初五出也
신천군수 윤희(尹憘)인물가 장을 맞아 죽었고, 우의정개념 민암(閔黯)인물훈련대장개념 이의징(李義徵)인물, 장희재(張希載)인물가 감옥에 갇혔다. 성호빈(成虎彬)인물은 심문을 받으면서 판의금(判義禁)개념 류상운(柳尙運)인물의 면전에 “대감 또한 은화(銀貨)물품를 끌어 모으던 사람인데, 어찌 우리들을 심문하고 죄를 다스릴 수 있는가?”라고 꾸짖자, 류상운인물은 바로 인피(引避)하여 체직되었고, 신여철(申汝哲)인물이 그를 대신했다. 이조좌랑개념 김시걸(金時傑)인물문사낭청(問事郎廳)개념으로서 영의정개념병조판서개념 서문중(徐文重)인물이 느슨하게 심문한 일을 엄하게 꾸짖으라는 상소를 올리자, 서문중인물은 바로 병부(兵符)를 풀어 바치고 떠났고 영의정개념 또한 인피하여 들어가서는 근유(勤諭)[1]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김시걸(金時傑)인물이 삭직되었다. 노론과 소론의 다툼이 이미 이러하니, 가소롭다. 윤지완(尹趾完)인물박세채(朴世采)인물좌의정개념우의정개념이 되었다고 한다.
尹信川憘杖下致斃 閔右相李訓將張希載姑在仍囚中 成虎彬當受訊面斥判義禁柳尙運曰 大監亦是聚銀貨之人而何可推治我輩乎 柳卽引避遞職 申汝哲代之 吏佐金時傑以問事郞上疏峻斥領相及兵判徐文重緩治鞫事 徐卽解符以納而走 領亦引入 勤諭不出 仍削時傑之職 老少之鬪已如此 可笑 尹趾完朴世采爲左右相云
김운서(金雲瑞)인물 생(生)과 연동(蓮洞)공간에 가서 어초은(漁樵隱) 묘공간 아래에 묏자리 두 곳을 잡았다. 전부 형님인물반장(返葬)개념하는 계획을 위한 것이다. 내 뜻이 원래 반장하려는 것이었기에, 초상이 났을 때 두서(斗緖)인물에게 편지를 써서 그렇게 하라고 강조하며 지시했다. 그러나 형수님인물의 병이 위중하고 상주가 멀리 떠날 수 없어 두서인물의 장인 도사(都事)개념 이형징(李衡徵)인물의 말에 따라 월천산(月川山)공간에 장사지냈다. 형수님인물은 그 산이 마음에 들지 않고 선영의 곁에 장사지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며, 내게 편지를 써서 속마음을 누누이 털어놓으면서 반드시 반장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뛰어난 풍수가 없이 잘 모르고 묏자리를 새로 잡는 것보다는 선산 아래 묘를 써서 조상 곁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실로 인정과 도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형수님인물의 말을 듣고 옳게 여겨 이렇게 막대기를 꽂아 표시한 것이다.
○與金生往蓮洞 於漁樵隱墓下點穴兩處 蓋爲典簿兄主返葬計也 余意則固欲返葬 故聞喪之初 裁書於斗緖 勤敎此意而 嫂主病重 喪主不可遠離 用其氷翁李都事衡徵之言 襄奉於月川山 嫂主以山旣不協 且未能奉厝先塋之側爲恨 貽書於我 縷縷陳情 必欲返歸 余之本意以爲 今無明術 如其新卜而不審 寧用先山之下 不離祖先之側 實合情理 故聞嫂主之言而是之 扦點如右

























주석

  1. 근유(勤諭): 임금의 정성스런 말씀